프라하로 가는 길 ignorance







민박집에 머무르게 되면 여러가지 이유로 한국을 떠나 여행을 하거나, 유학을 하거나, 휴가를 왔거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비가 내내 오는 뮌헨을 등지고 하루 여정을 앞당겨 프라하로 오기로 마음먹었을때, 아침은 여전히 스산했다.

주말 일기예보에는 해가 뜰 것이라고 했지만, 해가 뜨는 뮌헨을 기다리기에는 마음이 급해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 한 청년과 중악역에서 한국으로 보내는 짐을 부치고 프라하행 티켓을 끊었다. 

완행으로 가는 여정이라 장장 여섯시간이나 기차를 타야만 했다. 기차시간까지는 시간이 남아 뮌헨에서 BMW박물관을 마저

가보기로 한다. 지난번에는 월요일이라 휴관이었고, 일때문이라도 다시 한번 가야할 것만 같았다. 

트램을 탔다. 독일에서 처음 타는 트램이었다. 트램을 먼저 만들었기 때문인지 독일의 주요 관광지는 지하철보다 트램이 더 

편리할때가 많다. 그러나,  BMW박물관은 지하철역에서 바로나와야만 있었다. 동행하는 청년이 (청년이라니까 어감이 이상하지만,

친동생과 동갑이다.) 트램을 타보고 싶어했다. 올림픽 공원 WEST 역에서 내렸다. 박물관은 EAST에 있다. 올림픽 공원을 가로질러

20분이나 걸었다. 공원에는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프라하로 갈 예정이기에 짐을 질질 끌고 다녀야만 했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전면이 영상으로 뒤덮힌 전시 공간이 나왔다. 그리고 연대기별로 근사하게 엔진, 오토바이, 자동차 모델들을

진열해 놓았고, 각각의 정보를 알 수 있게끔 해놓았다. 박물관에서는 의무감으로 사진기의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맞은편에 있는 BMW 건물에서 나는 월요일에 먼저 둘러본 터라 바뀐 부분만 확인하고 먼저 중앙역으로 향했다.


올림픽파크 지하철역 입구에서 잠시 한숨을 돌린 후 에스컬레이터에 짐을 싣고,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철이 먼저 보였고,

나는 안쪽으로 들어가며 중앙역쪽인가요? 하고 물었다. 의자에 먼저 앉은 노부인이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짐을 이끌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문을 향해 바라보고 서 있는데, 한 노인이 다가왔다. 그는 중앙역으로 가려면 한번 갈아타야 한다고

영어로 일러주었다. 그래서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그 노인도 중앙역으로 가는 길이었나보다. 지하철에서 내려야 할 정거장에서

나보고 내리라고 손짓을 해주었다. 중앙역까지 갈아타는 길도 안내해주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도 내가 잘 따라오나 뒤를

돌아보았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몇 정거장이 남아 있어 자리에 앉았다. 그는 나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았다. 처음부터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냐고

묻지 않았던게 다행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는 서울을 알았다. 세울이라고 발음하길래 정확한 발음은 서울이라고

정정해주었다. 그의 아들이 뮌헨 대학에 있는 교수인데 서울 대학교와 무슨 공동 작업을 해서 잘 안다고 했다. 영어를 배운지는 6년이

되었는데 그의 아들이 자신이 영어로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을 안다면 무척 놀라워 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독일만 여행중이라고

했더니 굉장히 놀라워했다. 독일만? 네. 지금은 뮌헨에서 프라하로 가는 길이지만 프라하에서 베를린으로 갈거예요.

프라하는 독일인은 프락이라고 발음을 하고 반은 독일어를 쓰는 사람이 있단다. 그렇군요. 바바리안들이 가서 많이 살고 있지. 네.

나는 그의 말을 경청했고, 그는 나에게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아들이 생일 선물로 시베리아 열차 여행을 보내준다고 했다.

할아버지 연세에 힘드시지 않겠어요? 글쎄 나의 아내는 안가고 나 혼자 갈거야. 시베리아, 우즈베키스탄, 몽골, 그리고 베이징에서 끝나지. 

그는 패킹이라고 발음했다. 베이징? 중국이요? 엄청나게 긴 여행이네요. 이번 오월 말에 떠나게 될거란다. 기대되시겠어요.

중앙역으로 가는 길까지 천천히 짐을 끌고 갔다. 중앙역 플랫폼에서 사진을 한장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는 Why not? 이라고 했다.

조금 웃음이 났다. 중앙역에서 무리를 지어 있는 한 소녀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할아버지는 소녀에게 나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한국에서 독일로 여행을 왔는데 기념을 할만한 사진을 찍고 싶구나. 소녀는 웃었다. 그리고 수줍은 미소처럼 따뜻한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이메일 주소를 쓰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사진을 인쇄해서 우편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는 자켓 안 주머니에 있던 보험회사에서 온 우편을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우편주소를 받아적었다.  Friedrich Zaeh. 그의 이름이다.

Zaeh씨는 열차 시간이 40분이나 더 남았으니 뭐라도 마시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바바리안 맥주를 마셨다.

뮌헨에서의 마지막 맥주였다. 역 한 가운데 높은 테이블에 앉았다. 한 할아버지와 동양인 여자가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그는 아주 오래된 가죽 지갑에서 가족 사진을 꺼내서 아들 두명과 손자 두명을 소개해주었다. 손자라는 영어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서

한참을 고민하다 그만 두었다. 손자와 체스를 하는 모습도 있고, 사진은 가족 사진 전체, 아들 손자 사진, 손자와 체스 두는 사진 세장 뿐이었다.

품에 소중히 간직하고 다니고 있었다. 무슨 메모들도 보였는데 독일어라서 알수는 없었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예전의 독일처럼 2차 대전 이후에 이데올로기로 인해서 분단 된 나라임을 알고 있었다. 

어서 너희 나라도 독일처럼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분단된지 오래되긴 했지요. 이제 거의 60년이 되어가는 걸요. 

그는 그가 여행을 시작할 시베리아에서 우편 엽서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소소한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열차 시간이 다가왔다.

역시 맥주는 맛있지만, 양이 너무 많아서 미처 다 마시지 못했다. 열차까지 짐을 실어주고 완행열차라서 짐칸에 짐을 올려야 했는데

둘다 그렇게 힘이 세지는 못했다. 그리고 지나가던 한 행인이 도와주었다. Zaeh씨는 열차에서 내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스트레이트 스토리로, 동생이 형을 만나러 잔디깎이를 타고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큰 사건도 없고, 큰 임팩트도 없었다. 그냥 잔잔하다. 

그는 내게 말했다. 

너는 아직 젊고 매력적인 아이란다.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대로 살 수 있는 시간이 있단다. 

나는 고맙다고 대답했다. 뭔가를 하기도 전에 벌써 늙고 지쳐버린 마음이 조금씩 살아나는 것 같았다.


짐을 올려준 아저씨는 독일 농부 같은 타입이었다. 단벌처럼 보이는 검은 색 가죽자켓을 입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지만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자꾸 독일어로 말했다.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지만, 정말 알아듣기 어려웠다.

기차 안으로 하나 둘씩 사람이 찼다. 나는 방금 마신 맥주에 잠이 노곤하게 쏟아졌다.

앞으로 프라하까지 여섯시간, 열차 안이 무척 추웠다. 그래도 잠이 와서 의자에 몸을 푹 파묻고 잠이 들었다.

기차표를 검수하는 점검원이 들어왔다. 티켓을 보여주고 나니 독일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시골 마을은 어디나 다 똑같다.

그 정경을 고향이라고 부른다면, 누구나 다 돌아가고 싶은 그런, 변하지 않는 추억이 담긴 곳 같은 장소이다.

네명이 앉아 있었는데 첫번째 사람은 피곤한 표정을 짓다가 역에서 후다닥 내려버렸고, 두번째 사람은 인사를 하고 내렸다.

또 단둘이 남아있게 되자, 말을 걸어왔다. 역시 못알아 들었다. 이름정도 얘기하고 자신이 내리는 역을 설명해주었는데, 미안하다고

대답하고 창밖을 바라봤다. 내릴 역이 되자, 내가 여기서 1964년부터 산 동네라고 소개를 해주었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이었다.

좋은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얘기하고 역에서 내리자, 나는 혼자 남았다.

프라하에 가는 길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열차 안이 너무 추워서 짐에서 옷을 꺼내 껴입고 다시 잠들려고 해봤다.

국경을 기차로 넘는 설레임이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더 큰 감정의 변화가 일었다. 여권을 검사하고 표를 검사하고 어느덧,

체코로 넘어왔다.


어스름한 저녁, 기분 탓인지, 잠은 안오고 한국에서 일어났던 일만 생각났다. 꼼짝 하지 않고 그 좌석에 홀로 앉아 차창밖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흘러간 기억들을 떠올렸다. 열차는 천천히 달리고 있었고 밤이 되었다. 기차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어느 역이 되자

시끄러운 무리들이 기차에 탔다. 그리고 다음 역이 되자, 무장경찰들이 기차에 올라탔다. 감상에 빠지다가 무장경찰들을 보니, 

다시 긴장되었다.

무슨 일인가요? 아무것도 아니예요, 축구 광팬이예요. 

경찰들은 기차 통로에 서서 시끄럽게 술마시고 노래하는 이들을 잠잠하게 만들었다. 기차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어두움과 경찰,

경찰들의 수가 더 많아서 그들이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 더 시끄러웠다. 하지만 조용히 통로에 있는 경찰들을 보며 다시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밤이 되고, 시계가 없는 그런, 이제 곧 내려야 했다.

프라하의 글자만 보고 다른 역에서 잘못내렸다. 내리기 전에 프라하 중앙역이 맞냐고 물었지만, 눈에 촛점이 없는 중국인 남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자리로 들어가버렸다. 허겁지겁 내렸지만, 다른 역이었다. 바람이 굉장히 불었다. 짐을 끌고 왔다갔다 하다 다음 열차

행선지가 표에 나와있는 중앙역 이름이랑 같았다. 

어쩌지, 하고 있는데 60년대에나 만들었음직한 O2 열차가 왔다. 표에 있는 역 이름을 확인하고 승차했다.

기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다음 정거장인 중앙역에 내렸다.

기차를 같이 타고온 경찰들이 보였다. 나가는 길을 물어보고 미로처럼 생긴 중앙역 플랫폼을 빠져나왔다.  

원래 기차도 20분 연착한데다, 뒤에 차를 타고 온 탓에 12시가 되어야 프라하에 도착했다.

프라하. 유로화도 못쓰고, 공중전화 조차 못쓰는 밤. 또다른 도시다.

아무곳에도 연락할 수 없고, 말조차도 전혀 알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생각난 것은 카프카의 도시라는 것 뿐.

중앙역 밖을 나가보니, 그로테스크한 건물들이 불빛도 없이 서 있고, 비까지 내려 길은 음산했다.

호텔 사인만 보고 짐을 이끌었다. 

안심을 하기까지는 새벽 세 시가 지난 후였고, 긴 꿈을 꾸었다. 이제 꿈같은 하루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