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행기 - 프롤로그

독일 여행을 계획하게 된건, 2008년 4월부터이다. 일을 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2010년 4월에 떠나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엄밀히 독일 주요 도시 여행 + 프라하 여행이며, 총 기간은 4월 25일부터 5월 31일 까지였다.

루트는 프랑크푸르트 - 뮌헨 - 프라하 - 베를린 - 프랑크푸르트이다.

이용 비행기편은 서울 - 프랑크푸르트 직항 루프트한자로 IN - OUT 도시가 같았다.

출발시 한국에서 체크한 기온은 20도를 웃돌았으나, 그건 잠깐이었고 독일에서 이상저온과 장대비에 고생을 해야했다.

우산, 그리고 사진기, 짐짝들이 번거로워서 이동 자체가 힘들었다.

각 도시 체류기간은 약 8~10 정도여서 독일 패스 대신 구간권으로 이동하였다.

여행의 기본 목표는 쓰고 싶은대로 쓰고 먹고 싶은대로 먹고 보고 싶은대로 하자, 라는 것이어서,

하루종일 빈둥빈둥 논 날도 있고,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닌 날도 있었다.

워낙 길을 잘 몰라서 처음 도시에서는 거의 택시를 이용하고, 지하철은 베를린, 뮌헨에서 주로 이용했다.

프랑크푸르트는 묵는 곳이 중앙에서 걸어서 5분이었고, 프라하는 성에서 5분 거리여서 그 주위에서 놀았다.

우아한 카페에서 글쓰기나, 한가롭게 전경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부터의 전투와 느린 인터넷에 대한 불만 그리고 맛없는 음식에 대한 피로가 누적되었다.

물에 섞인 석회질에 머리결이 폭탄을 맞은 것 같았고, 양치질하면 이가 시렸다.


그래도 다시 움직이겠느냐고 하면, 당연히 YES이다.

Lena - Satellite (Germany)



독일에 있을때, 거의 하루에 몇번씩 듣게 되었던 음악.

돌아왔다.

베를린의 동물원 ignorance

베를린의 동물원, 

가장 먼저 가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 미루다 한적한 월요일에 찾아갔다.

동물원에는 아기를 데리고 온 엄마들, 견학온 학생들, 그리고 데이트 나온 노부부들, 혼자 온 사람들, 

이제 막 데이트를 시작한 커플까지, 동물원에서 동물보다 사람 구경을 더 많이 했다.

아마도 그들에게 한적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동양 여자애가 신기했는지, 가끔 힐끔 거리며 쳐다봤다.

동물원에서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추운 베를린에서 따뜻한 나라에서 살던






동물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거나,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참새가 모이통의 모이를 먹느라 분주히 날아다니는 모양새나,

모두 눈여갸 보았다.

프라하의 강가에서나 여기 베를린에서나 오리들은 쌍쌍이 잠이 든다.


동물들도 어디서 데리고올때, 제 맘에 들든 안들든 짝을 맞춰서 데리고 오는데, 

여기 베를린에서 하염없이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으려니, 얼른 따뜻한 곳으로 움직이고 싶어졌다.



베를린, 베를린 미분류





베를린이다. 프라하에서 베를린으로 넘어오자마자, 베를린 입성, 이라는 단어가 머릿 속에서 맴돌았다. 

점점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어서인지 날씨는 적응하기 어려웠다. 

뮌헨에서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고, 프라하에서는 그나마 낮에 비가 멈추어 해를 볼 수 있었다.

우산을 필수로 챙기던 중, 5일 중 하루만 비가 아주 제대로 내리고 나머지는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하필이면, 토요일 사람도 많은 날 비가 많이 내려서 관람할때마다 번거롭고, 피곤하고 사진도 별로 찍지 못했다.

베를린에 와서 좋아하는 볼펜을 두개나 잃어버렸다. 하나는 도이체 박물관에서 산 것, 하나는 바우하우스 아카이브에서 산 것.

바우하우스 아카이브에서 몇개를 더 구입해야겠다. 첫번째 잃어버렸을때는 다음에 더 좋은 볼펜을 만날 수 있겠지 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견뎠으나, 두번째 잃어버렸을때는, 정말이지 화가났다.

그만큼 뭔가를 꺼내서 쓰고, 넣고 하는 번거로운 일들이 많아졌고, 분주했다.




뮌헨은 뮌헨이니까, 프라하는 성 그리고 카프카, 베를린은 바우하우스와 클레 이렇게 마음 속으로 정했다.




움직이기 시작한 첫째날은 우선 포츠담 플라자에 들렀다. 우선 미술관도 보고 소니 센터에도 가보고, 겸사 겸사 갔다가

여러 박물관에 발길이 붙잡혔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가장 먼저 가보고 싶었던 바우하우스 아카이브를 둘러보고, 

미니멀리즘 -IMI-관련 갤러리 강연을 듣고

3D 아이맥스 영화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를 봤다.

조금 돌아볼만 한 두번째날은 박물관 섬, 독일 역사 박물관, 유대인 박물관을 갔다.

비바람이 불고 추워서 되는대로 안으로 돌아다녔다.

그리고, 세번째날이 되어서야 가고 싶은 곳, 베를리니쉬 갤러리와 도이체 구겐하임에 간 다음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를 들었다.

월요일은 거의 모든 박물관이 휴관이라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에서 하루 종일 놀았다. 자전거를 빌려서 공원과 베를린 곳곳을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다.

화요일인 오늘 파울 클레를 볼 수 있는 Sammlung Sharf-Gerstenberg 와 그 일대 미술관 세군데, 궁전 앞이라 궁전 구경하고 자전거를 

반납한 후 간단한 쇼핑을 했다. 그리고 소화해야 할 일정이 산더미 같다.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서 아쉬웠지만 무엇보다도 독일어를 전혀 이해할 수 없어서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 더 안타깝다.


아직 베를린. 이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내가 독일의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니!

-

여러 메모가 충돌하고, 마치 잠들어 있었다는 듯, 깨어나는 기분이다.

-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자꾸 시계를 쳐다보게 된다. 


무엇을 써야 할지 난감한게 아니라 써야 할 것이 너무 많아 난감하다.

그래, 일단 쓰자. 그리고 내일이 기대가 되는 시간이 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프라하로 가는 길 ignorance







민박집에 머무르게 되면 여러가지 이유로 한국을 떠나 여행을 하거나, 유학을 하거나, 휴가를 왔거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비가 내내 오는 뮌헨을 등지고 하루 여정을 앞당겨 프라하로 오기로 마음먹었을때, 아침은 여전히 스산했다.

주말 일기예보에는 해가 뜰 것이라고 했지만, 해가 뜨는 뮌헨을 기다리기에는 마음이 급해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 한 청년과 중악역에서 한국으로 보내는 짐을 부치고 프라하행 티켓을 끊었다. 

완행으로 가는 여정이라 장장 여섯시간이나 기차를 타야만 했다. 기차시간까지는 시간이 남아 뮌헨에서 BMW박물관을 마저

가보기로 한다. 지난번에는 월요일이라 휴관이었고, 일때문이라도 다시 한번 가야할 것만 같았다. 

트램을 탔다. 독일에서 처음 타는 트램이었다. 트램을 먼저 만들었기 때문인지 독일의 주요 관광지는 지하철보다 트램이 더 

편리할때가 많다. 그러나,  BMW박물관은 지하철역에서 바로나와야만 있었다. 동행하는 청년이 (청년이라니까 어감이 이상하지만,

친동생과 동갑이다.) 트램을 타보고 싶어했다. 올림픽 공원 WEST 역에서 내렸다. 박물관은 EAST에 있다. 올림픽 공원을 가로질러

20분이나 걸었다. 공원에는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프라하로 갈 예정이기에 짐을 질질 끌고 다녀야만 했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전면이 영상으로 뒤덮힌 전시 공간이 나왔다. 그리고 연대기별로 근사하게 엔진, 오토바이, 자동차 모델들을

진열해 놓았고, 각각의 정보를 알 수 있게끔 해놓았다. 박물관에서는 의무감으로 사진기의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맞은편에 있는 BMW 건물에서 나는 월요일에 먼저 둘러본 터라 바뀐 부분만 확인하고 먼저 중앙역으로 향했다.


올림픽파크 지하철역 입구에서 잠시 한숨을 돌린 후 에스컬레이터에 짐을 싣고,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철이 먼저 보였고,

나는 안쪽으로 들어가며 중앙역쪽인가요? 하고 물었다. 의자에 먼저 앉은 노부인이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짐을 이끌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문을 향해 바라보고 서 있는데, 한 노인이 다가왔다. 그는 중앙역으로 가려면 한번 갈아타야 한다고

영어로 일러주었다. 그래서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그 노인도 중앙역으로 가는 길이었나보다. 지하철에서 내려야 할 정거장에서

나보고 내리라고 손짓을 해주었다. 중앙역까지 갈아타는 길도 안내해주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도 내가 잘 따라오나 뒤를

돌아보았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몇 정거장이 남아 있어 자리에 앉았다. 그는 나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았다. 처음부터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냐고

묻지 않았던게 다행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는 서울을 알았다. 세울이라고 발음하길래 정확한 발음은 서울이라고

정정해주었다. 그의 아들이 뮌헨 대학에 있는 교수인데 서울 대학교와 무슨 공동 작업을 해서 잘 안다고 했다. 영어를 배운지는 6년이

되었는데 그의 아들이 자신이 영어로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을 안다면 무척 놀라워 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독일만 여행중이라고

했더니 굉장히 놀라워했다. 독일만? 네. 지금은 뮌헨에서 프라하로 가는 길이지만 프라하에서 베를린으로 갈거예요.

프라하는 독일인은 프락이라고 발음을 하고 반은 독일어를 쓰는 사람이 있단다. 그렇군요. 바바리안들이 가서 많이 살고 있지. 네.

나는 그의 말을 경청했고, 그는 나에게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아들이 생일 선물로 시베리아 열차 여행을 보내준다고 했다.

할아버지 연세에 힘드시지 않겠어요? 글쎄 나의 아내는 안가고 나 혼자 갈거야. 시베리아, 우즈베키스탄, 몽골, 그리고 베이징에서 끝나지. 

그는 패킹이라고 발음했다. 베이징? 중국이요? 엄청나게 긴 여행이네요. 이번 오월 말에 떠나게 될거란다. 기대되시겠어요.

중앙역으로 가는 길까지 천천히 짐을 끌고 갔다. 중앙역 플랫폼에서 사진을 한장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는 Why not? 이라고 했다.

조금 웃음이 났다. 중앙역에서 무리를 지어 있는 한 소녀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할아버지는 소녀에게 나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한국에서 독일로 여행을 왔는데 기념을 할만한 사진을 찍고 싶구나. 소녀는 웃었다. 그리고 수줍은 미소처럼 따뜻한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이메일 주소를 쓰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사진을 인쇄해서 우편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는 자켓 안 주머니에 있던 보험회사에서 온 우편을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우편주소를 받아적었다.  Friedrich Zaeh. 그의 이름이다.

Zaeh씨는 열차 시간이 40분이나 더 남았으니 뭐라도 마시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바바리안 맥주를 마셨다.

뮌헨에서의 마지막 맥주였다. 역 한 가운데 높은 테이블에 앉았다. 한 할아버지와 동양인 여자가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그는 아주 오래된 가죽 지갑에서 가족 사진을 꺼내서 아들 두명과 손자 두명을 소개해주었다. 손자라는 영어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서

한참을 고민하다 그만 두었다. 손자와 체스를 하는 모습도 있고, 사진은 가족 사진 전체, 아들 손자 사진, 손자와 체스 두는 사진 세장 뿐이었다.

품에 소중히 간직하고 다니고 있었다. 무슨 메모들도 보였는데 독일어라서 알수는 없었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예전의 독일처럼 2차 대전 이후에 이데올로기로 인해서 분단 된 나라임을 알고 있었다. 

어서 너희 나라도 독일처럼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분단된지 오래되긴 했지요. 이제 거의 60년이 되어가는 걸요. 

그는 그가 여행을 시작할 시베리아에서 우편 엽서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소소한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열차 시간이 다가왔다.

역시 맥주는 맛있지만, 양이 너무 많아서 미처 다 마시지 못했다. 열차까지 짐을 실어주고 완행열차라서 짐칸에 짐을 올려야 했는데

둘다 그렇게 힘이 세지는 못했다. 그리고 지나가던 한 행인이 도와주었다. Zaeh씨는 열차에서 내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스트레이트 스토리로, 동생이 형을 만나러 잔디깎이를 타고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큰 사건도 없고, 큰 임팩트도 없었다. 그냥 잔잔하다. 

그는 내게 말했다. 

너는 아직 젊고 매력적인 아이란다.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대로 살 수 있는 시간이 있단다. 

나는 고맙다고 대답했다. 뭔가를 하기도 전에 벌써 늙고 지쳐버린 마음이 조금씩 살아나는 것 같았다.


짐을 올려준 아저씨는 독일 농부 같은 타입이었다. 단벌처럼 보이는 검은 색 가죽자켓을 입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지만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자꾸 독일어로 말했다.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지만, 정말 알아듣기 어려웠다.

기차 안으로 하나 둘씩 사람이 찼다. 나는 방금 마신 맥주에 잠이 노곤하게 쏟아졌다.

앞으로 프라하까지 여섯시간, 열차 안이 무척 추웠다. 그래도 잠이 와서 의자에 몸을 푹 파묻고 잠이 들었다.

기차표를 검수하는 점검원이 들어왔다. 티켓을 보여주고 나니 독일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시골 마을은 어디나 다 똑같다.

그 정경을 고향이라고 부른다면, 누구나 다 돌아가고 싶은 그런, 변하지 않는 추억이 담긴 곳 같은 장소이다.

네명이 앉아 있었는데 첫번째 사람은 피곤한 표정을 짓다가 역에서 후다닥 내려버렸고, 두번째 사람은 인사를 하고 내렸다.

또 단둘이 남아있게 되자, 말을 걸어왔다. 역시 못알아 들었다. 이름정도 얘기하고 자신이 내리는 역을 설명해주었는데, 미안하다고

대답하고 창밖을 바라봤다. 내릴 역이 되자, 내가 여기서 1964년부터 산 동네라고 소개를 해주었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이었다.

좋은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얘기하고 역에서 내리자, 나는 혼자 남았다.

프라하에 가는 길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열차 안이 너무 추워서 짐에서 옷을 꺼내 껴입고 다시 잠들려고 해봤다.

국경을 기차로 넘는 설레임이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더 큰 감정의 변화가 일었다. 여권을 검사하고 표를 검사하고 어느덧,

체코로 넘어왔다.


어스름한 저녁, 기분 탓인지, 잠은 안오고 한국에서 일어났던 일만 생각났다. 꼼짝 하지 않고 그 좌석에 홀로 앉아 차창밖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흘러간 기억들을 떠올렸다. 열차는 천천히 달리고 있었고 밤이 되었다. 기차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어느 역이 되자

시끄러운 무리들이 기차에 탔다. 그리고 다음 역이 되자, 무장경찰들이 기차에 올라탔다. 감상에 빠지다가 무장경찰들을 보니, 

다시 긴장되었다.

무슨 일인가요? 아무것도 아니예요, 축구 광팬이예요. 

경찰들은 기차 통로에 서서 시끄럽게 술마시고 노래하는 이들을 잠잠하게 만들었다. 기차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어두움과 경찰,

경찰들의 수가 더 많아서 그들이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 더 시끄러웠다. 하지만 조용히 통로에 있는 경찰들을 보며 다시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밤이 되고, 시계가 없는 그런, 이제 곧 내려야 했다.

프라하의 글자만 보고 다른 역에서 잘못내렸다. 내리기 전에 프라하 중앙역이 맞냐고 물었지만, 눈에 촛점이 없는 중국인 남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자리로 들어가버렸다. 허겁지겁 내렸지만, 다른 역이었다. 바람이 굉장히 불었다. 짐을 끌고 왔다갔다 하다 다음 열차

행선지가 표에 나와있는 중앙역 이름이랑 같았다. 

어쩌지, 하고 있는데 60년대에나 만들었음직한 O2 열차가 왔다. 표에 있는 역 이름을 확인하고 승차했다.

기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다음 정거장인 중앙역에 내렸다.

기차를 같이 타고온 경찰들이 보였다. 나가는 길을 물어보고 미로처럼 생긴 중앙역 플랫폼을 빠져나왔다.  

원래 기차도 20분 연착한데다, 뒤에 차를 타고 온 탓에 12시가 되어야 프라하에 도착했다.

프라하. 유로화도 못쓰고, 공중전화 조차 못쓰는 밤. 또다른 도시다.

아무곳에도 연락할 수 없고, 말조차도 전혀 알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생각난 것은 카프카의 도시라는 것 뿐.

중앙역 밖을 나가보니, 그로테스크한 건물들이 불빛도 없이 서 있고, 비까지 내려 길은 음산했다.

호텔 사인만 보고 짐을 이끌었다. 

안심을 하기까지는 새벽 세 시가 지난 후였고, 긴 꿈을 꾸었다. 이제 꿈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프라하 ignorance

생각보다 빨리 프라하로 왔다. 프라하로 오는 길은 여러 에피소드가 많았다.

호텔에서 하룻밤 묵고 숙소로 왔다. 밤에 본 프라하는 그로테스크 했는데 낮에 보니 또 다른 얼굴이다.

원래 뮌헨 7일 프라하 4일 정도였다가 뮌헨 5일 프라하 9일로 일정이 바뀌었다.

프라하에서 한 숨 쉬고, 성으로 가야겠다.

뮌헨은 여러모로 많이 피곤했다. 프라하에서의 하루가 그냥 간다. 

프라하 구시가지에서 짐을 풀고 나니, 정말 유럽이구나 하고 점점 더 한국과 멀어지는 것 같다.

어젯밤에는 한국으로 전화해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긴 꿈을 꾸었다.

뮌헨은 계속 비 ignorance

일주일 내내 비가 온다. 돌아다니기 너무 피곤할 정도로 비가 온다. 

내일까지만 더 머무르고 여정을 바꿔볼까, 프라하로 떠나야겠다.

구석구석 갤러리들, 박물관들, 미술관들을 돌아다녀봤다.

처음에는 규모에 압도당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반만년 유구한 역사라는 익숙한 구절이 떠올랐다.

한 땅에서 나고 자라 역사를 만든 나라, 구석기 시대 유적 발굴 부터 - 전곡리 -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이나믹한 나라.

예수의 수난과 그리스신화가 아닌, 굉장히 하이브리드한 에너지가 있는 나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나라,

조그맣게 바글바글 그리고 독재를 경험했다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다양한 세대가 충돌하는 나라.

우리나라가 프리즘에 비추어지는 것 마냥 비춰지고, 밥이 그립고, 다양한 반찬이 그립고, 정이 그립고 그렇다.

혼자 뚝 떨어져 일주일 남짓, 오래 여행할만한 체질이 아닌데, 자꾸 걷다보니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방구석이 그립다. 비만 오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그립진 않았을텐데, 춥고 본 것들이 너무 많아서 혼란스럽다.

일단 열흘은 좀 더 참아보자, 마음을 다 잡아본다. 그래도 끊임없이 내리는 비는 몸도 마음도 지치게 한다.

사진도 이것저것 열심히 찍다가 비가 와서 그냥 그림만 봤다. 한꺼번에 모든 걸 다 담을 순 없어도 떠 있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점점 느껴지는 이질감이라고나 할까, 문화를 접할수록 느껴지는 충돌이 거세게 다가온다.

오늘은 파울 클레, 열심히 봤다. 반가웠다. 그냥.



비오는 뮌헨, 도이체 박물관 ignorance





뮌헨에서 3일동안 내내 비가 온다. 떠날때까지 비가 올 것 같다. 아직 목요일에 떠날지, 금요일에 떠날지 결정을 못했다.

뮌헨에 있는 박물관을 다 돌아볼 수는 없을 것 같고, 몇개만 선택적으로 보아야 하는데, 여행 정보가 생각외로 없다.

프랑크푸르트나 뮌헨은 1~2일 정도 코스로 생각하는 것 같다.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좀 더 구체적인 여행의

윤곽이 드러났다. 그동안 표면적인 부분, 거리 구석구석 분위기를 보았다면, 내일부터는 집중적으로 박물관 위주로 돌아볼까 한다.

오늘 다녀온 도이체 박물관 - 근대 독일의 기술 발전사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일요일이라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정말 많이 왔다.

지하부터 꼭대기층까지 박물관 하나 돌아보는데 하루 걸렸다. 정말 마음에 들었던 건 탄광 체험인데 처음 지하층으로 들어갈때

- 원래 별로 지하 안좋아하지만, -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며 탄광으로 점점 들어가며, 그곳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실물크기의 인물모형과 진짜 사용했음직한 도구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고 아이들이 탈 수 있는 놀이기구도 있다.

탄광이 길어서 일종의 휴게시설처럼, 부모님이 볼 수 있고 아이들은 탄을 움직였던 기구들을 타면서 놀았다.

각 층마다 어린이들이 직접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도우미가 있었다. 악기 전시실에는 악기만 보는 게 아니라 직접 악기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고, 미세 광학 이라고 해야되나, 현미경 보는 곳에는 현미경을 직접 사용하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어린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모두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사진기 전시실에는 카메라 기술들을 볼 수 있게끔 설명문과 안쪽 부분을 뚝 잘라서 - 렌즈 안쪽 겹겹의 층위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남산에 있는 서울 과학관이나, 대전에 있는 과학관 정도가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다.

마차리 탄광촌도 이곳처럼 갱도 터널 전시를 볼 수 있다. 음향 효과까지 있으니, 더 실감날 수도 있겠다.

도이체 박물관은  기술실물과 이야기가 있는 전시 구조로 되어 있다. 

윗쪽으로 올라갈수록 최근 과학들을 볼 수 있는데,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방법이 덜 피곤할 것 같긴 하다. 

층별 전시를 다 관람하고 설명까지 들으면 하루가 금방 간다.

천천히 생각하고, 기록하고, 쉬고, 피곤하면 자고, 다시 깨면 글을 쓰고, 눈을 뜨면 돌아다닌다.



뮤닉, 뮌헨으로 고고 ignorance

뮌헨이라고 하면 거의 못알아듣고, 뮤니끄 정도로 발음하면 좀 쉽다. 어제 칼스루에에 들렀다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모든 짐을 챙기고 떠난다.

가방을 볼때마다 왠 짐을 바리바리 싸왔지, 하는 후회가 들어서 좀 덜고 움직이려고 했는데 어차피 택시 타고 다닐거, 그냥 들고 다닌다.

쇼핑을 먼저 하려고 했는데, 어제 칼스루에에 다녀오고 나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이체도 잘 타고

혼자 씩씩하게 잘 돌아다니므로 하이힐을 벗고 운동화로 갈아신고 짐을 다시 챙겼다. 

넉넉하게 다니겠다고 아무리 마음먹어도 가만히 있으면 바깥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서 가만히 있지 못하겠다.

밤에 돌아와서는 소설도 쓰고, 글도 쓰고, TV도 본다. 인터넷이 되는 곳으로 여정을 바꾸었다.

독일이라고 해서 뭐든게 깨끗하고 안심이 되는 상황은 아니다. 모험삼아 타본 지하철에서 쥐를 보기도 하고, 공기도 탁하다.

정말 보통 레스토랑인데도 서빙하는 사람이 컵에 손가락을 담그질 않나, 피자가게에서는 돈을 만진 손으로 토핑을 뿌리기도 한다.

하지만, 바깥 공기가 좋아서 참을만하다. 최소한 숨을 쉴수는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단지 여행객이라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배고픔과 낯설음을 가장한 모든 상황들이 나를 나 답게 만든다.

긴장감에 차 문 여닫는 소리에도 놀란다. 

이렇게 날이 선 인식이 오랜만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ignorance

프랑크푸르트에 있다. 독일의 5월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이번 일주일 동안은 생각보다 날씨가 좋았다. 

휴대전화도 안되고, 아무데서나 인터넷을 쓸 수 없어서 가장 불편하다. 문명으로부터 이기가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키다니 놀랍다.

공중전화를 거는 방법은 하다 보니까 알게 되었다.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시차가 맞지 않아서 아무도 받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려고 했는데 익숙하지 않은 냄새 때문에 걷거나 택시를 탔다. 다음에 버스를 탈 수 있으면, 타고 다닐만 할 것 같다.

첫째날은 내내 낮을 보고 비행기를 타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피곤했다. 식욕도 없고, 잠도 안오고 만사가 귀찮았다.

두번째날은 도로가 익숙하지 않아서 길을 많이 헤맸다. 샐러드를 사먹었는데, 양이 너무 많다. 파스타를 사먹어도 양이 너무 많다.

소스도 많이 뿌리고 대체로 음식이 짭조롭해서 물을 많이 마시게 된다. 비행기 안에서도 내내 물만 먹고, 거리에서도 물만 먹는다.

음식이 대체로 진하고 빵은 너무 딱딱하다. 샌드위치를 사먹어도 딱딱하고, 햄도 너무 짜다. 

일회용 렌즈를 끼고, 선글라스를 끼고, 잔뜩 가린채로 돌아다녔다.

두번째 날이 되어서야, 생각보다 넓지 않은 도로, 지나다니는 자전거들이 눈에 들어왔다. 

길을 따라 그냥 걸어다닐만하다. 운동화를 신고 돌아다니면 밤새 걸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둘째날 길을 많이 헤메다가 물어보다가, 물어봐도 독일어로 말하는걸 이해할 수 없어서 서로 난감해했다. 

셋째날이 되어서야 길도 좀 눈에 들어오고 걸어다니는 방법도 알고 방위도 좀 익숙해졌다.

괴테하우스, 뢰머광장, 한국인이 즐겨찾는 여행지가 눈에 들어왔다. 안도감이 들었다.

나만 혼자 여기서 헤메는게 아니구나, 하는 그런 심정이었다.

프랑크푸르트는 대게 여행의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이다.

그래서 구석구석에 관한 디테일한 정보가 많지 않다. 알아서 헤쳐나가거나 소개된 곳만 돌아다니거나, 둘 중 하나다.

작은 갤러리나 뮤지엄들 위주로 해서 돌아다니려다가 오늘은 하루 쉰다.

근처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에 들어왔다. 지나가다가 인터넷을 하는 손님을 보고 반가워서 다시 찾아왔다.

역시 무선 인터넷이 된다.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아까는 갤러리에 초대되어 다녀왔다. 오늘 오픈식을 하고 전시를 소개하는데 역시나 독일어이다.

월요일에 들렀을때, 수요일날 찾아오라고 하더니, 9월달에 한국에 있는 코엑스에서 전시를 한다고 한다.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반가워했다. 

그냥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랑 대강 이야기 하고 가볍게 인사한다.

이정도가 딱 좋은 것 같다.

카페가 문을 닫을 것 같다.

이곳에 자주 올 것 같다.

3일이 지나서야 조금씩 적응이 되는데, 단기 여행이란 나에게 무리이긴 하다. 

내일은,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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